
글, 그리고 봄
김수남 X @Ceru_Y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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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시를 쓰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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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는 언제였는지 기억이 희미하다. 허나 분명한 것으로는 그 때의 그가 명일일보의 학예부 기자를 지내고 있었고, 문학에 대한 관심은 분명 있었으나 지금에 비하면 한결 덜했다는 사실이다. 그저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현실에 안주하며, 여남은 시간만을 사소한 사치거리로 쓰는 것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기야 애초에 이런 세상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몇이냐 되겠냐마는. 자신은 총을 들고 투쟁을 하기에는 모자랐으나 영합을 할 만큼 비겁하지도 않았기에. 그저 언제나와 다름없이 일에만 충실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던 쪽이다.
“이 원고들 교정 보고, 저녁 전까지. 알았죠?”
그래서 항상 습관적으로 작가들이나 독자들의 원고를 검토하고, 교정하고, 교열을 보고, 그런 일종의 편집 작업에만 매진해야 했다. 한때 처음으로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에 느꼈던 방향과는 분명 상이했지만, 그게 신문사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사실은 상부에서 전부 몇 차례씩 멋대로 글을 거르고 고치는 것이 첫 번째 의례였으니까. 그 때는 그 밖의 일에 손을 대면 어떤 위험에 놓일지 분명히 자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손 댈 생각을 하지도 않았으며, 대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는 매일을 무사히 살았다. 신문사의 시간은 늘 그렇게 균일하게 흘러갔다. 부서 안의 사람들이 부품처럼 적당한 속도로 맞추어 돌아갔으며 누구도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고요한 사무실 안에는 자잘한 펜과 타자기의 소리만 들려왔다.
수남은 동료가 내민 원고를 받아 들며 고개를 끄덕여 보인다. 두툼하다 느낄 정도는 아니었으나 하루에 모두 마감하기엔 적지 않은 양이었다. 반나절 꼬박 보다 보면 나아지려나. 엷은 한숨이 흩어졌다. 그는 원고지의 첫 장을 넘긴다. 익숙한 작가의 이름도 보였고, (아마도 필명이 태반일) 낯선 독자들의 이름도 보였다. 원래의 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문장이 조금씩 다듬어지고 오자가 바로잡힌다. 붉은 잉크에 적신 펜이 원고지 위에 차분히 반듯한 부호를 그려갔다.
“응?”
그러던 중 한 장의 페이지에서 강한 이질감이 들었다. 기고자의 성명이 적혀 있지 않은 종이. 원칙상 작가가 없는 글은 익명란이 아닌 이상은 실릴 수 없음이 당연하고, 실수로 빼먹었다면 사전에 검열할 때 수정이 되었어야 할 텐데. 유독 그 페이지만은 허전하게도, 조금은 거친 필체로 써내려 간 구절들만 가득할 뿐 어디에서도 작가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었다. 수남은 의아스레 종이를 넘겨 본다. 단 두 장, 그는 이것을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하던 차였으나. 그 글을 빼고 나니 지면에 실릴 만큼의 분량이 남았던 것을 보아 착오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따로 처리하면 그만이라 여기고는 다시 펜을 고쳐 쥐었던 것이다. 일단은 빼어 두고.
“お疲れさまでした。”
그리고 하나 둘씩 사무실을 떠날 느즈막한 저녁 즈음이 되어서야 수남의 눈에 다시 원고지가 들어왔다. 처리를 한다는 걸 타자까지 마감하느라 깜빡 잊었나. 그는 난처한 눈으로 종이를 펼쳐 들었다. 그리고 무심코 넘겼던 첫 장을 다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제목도 저자도 없는 글. 시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맞을 단장.
그 즈음 나는 한때 꿈꾸었던 따스한 때가 오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헛된 백일몽이라 불리울지도 모르겠으나 시간은 물처럼 막히지 않고 흘러가며 계절은 모르는 새에…
별다른 첨언이 없이도 잘 다듬어진 문장이 금새 시선을 사로잡았다. 눈에 띄게 기교를 부린 글은 아니었으나 담백하고 적당한 분위기의 문장들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장의 행은 끊겨 있었다. 분명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있음이 분명했으나 당연스럽게도. 수남은 하는 수 없이 원고를 챙겨 넣었다. 이대로 두고 가면 분명 내일은 사라지겠지. 버리기엔 아까운 문장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버린 탓이었다.
그리고 글 한 줄이라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차에서 내리는 그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도 생각은 한없이 가지를 뻗어 나아갔다. 저이는 어째서 이름도 없는 줄글을 보냈을까. 자신의 글이 실리지 않을 것을 알았을까? 알았다면 왜 보냈을까. 몰랐다면 또 왜 썼을까. 어느 쪽이든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지는 않았을까. 결국은 어떤 동질감, 어쩌면 이런 시대에 우리는 글로나마 스스로의 생각을 펼쳐내려 애써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 그 형태가 다르다고 한들 결국 언저리에 깔린 본질은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우리는 지금 어디로 걸어가고 있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계절이 겨울에 멎어 있다면. 우리가 그려야 할 풍경이 분명 존재하는 건 아닐까. 마땅히 그걸 생각하고 기다린다면 지금을 이리 허송하지 않고도 매일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꼬리를 무는 여러 의문은 그 즈음에서 끝을 맺었으나 그는 결국 제 거처로 돌아와서도 다시 원고를 꺼내어 볼 수밖에 없었다.
봄.
그 글에 닳도록 등장한 단 한 음절의 단어. 생각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다정한 온기가 느껴지도록, 배앝아내는 것만으로도 입 안에 꽃향기가 고이도록 만드는 단어. 어쩌면 각각이 살아오면서 맞이했던 봄은 그리 아름다운 형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지만, (더군다나 시대가 이리 된 이후로는 봄이 봄인 줄도 모르고 스쳐 지나가기 마련이었겠지만) 결국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존재하는 봄의 정경은 대개 비슷할 터다. 푸른 하늘과 피어오른 녹음, 그 사이로 흩날리는 색색의 꽃잎. 가벼워진 옷차림, 섞이는 사람들의 말소리. 고요하면서도 소란스러운, 그리고 사랑해 마지않는 어느 날의 풍경. 그는 다시 원고를 모아 든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검은 시야 아래로 분명히,
봄은 언제 온다는 전보도 없이 저 차를 타고 도적과 같이 왔구려.
단 한 문장이 맴돌았다. 그 글을 잇고 싶었다. 잘려나간 페이지만큼을 채우고 싶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어떠한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기분 좋은 설렘이 다가왔다. 어쩌면 봄처럼. 그래, 도적과 같이 제게 다가온 봄이 누군가의 한 줄 시일 수도 있었던 차였다. 조금은 낭만에 젖어 살아도 된다고, 그리 위로받을 수 있는 글이었으니까. 밤과 새벽을 지새워서라도 쉼없이 언젠가 저가 꿈꾸던 글을 쓸 수 있을까. 시를 쓸 수 있을까. 그렇다면. 더 이상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은 봄을 위해 펜을 쥘 수 있다면. 그 고운 글귀들이 이처럼 한 사람으로부터 또 새로운 위로가 될 수만 있다면. 그럼 봄이 올까. 진정으로 모두가 꿈꾸고 갈망해온 봄날이 허락될까.
그렇게, 나비 한 마리에도 봄은 오듯이.
그는 눈에 불을 붙이고 다시 제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들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시상을 자유로이 적어나가는 순간만큼은 저도 한 마리 하얀 나비가 된 듯했다. 새파란 초승달 아래 바다를 부유하다 지쳐 돌아와도 좋을 만큼의 자유. 언제 만끽해보는지 모를 희열감이 펜촉 끝으로부터 잉크처럼 번져 나갔다. 붉은 칸들이 정갈하고 단정한 활자로 빼곡히 채워진다. 오늘 밤 모든 걸 완성하도록.
다음 날 아침 수남은 조심스레 태준의 책상 앞에 섰다. 손에는 저가 밤새 썼던 시편이 들려 있었고. 그는 언제나처럼 안경을 한 번 고쳐 쓰고, 사무적이면서도 사람 좋은 미소로 응수했다.
"저, 학예부장님."
"아, 어쩐 일로."
"글 쓰는 이들, 모아 본다고 하셨죠."
"예, 한… 서너 명 정도 더."
"괜찮으시다면 함께하고 싶은데."
*
그리하여 삭막한 이 도시에도, 조금은 낭만과 예술이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