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평범한 칠인회의 밤

​김환태 X @_2ism

 아니 환태 형, 뮤즈를 모르오?

 수남의 목소리가 격해진다. 처음 물음을 꺼냈을 때와는 달리 고저가 다양해진 음성으로 다시 한 번 묻는다. 뮤즈, 뮤즈라니까. 수남의 입에선 이미 수십 번째 꺼내진 단어였다. 처음엔 수남을 말리는 척 은근한 눈길만 주던 태준도 이제는 아직도 입을 열지 않고 고개를 젓기만 하는 환태를 부추겼다.

 아, 뭔데?

 그럼에도 정적이 이어지자 이제는 한 병 더 술을 꺼내온 윤이 목을 긁듯 한 목소리로 물으며 종용에 가세했다. 하기사 해진의 이야기야 칠인회와 주변 문인이라면 모를 리가 없었고, 수남 역시 사랑에 빠지면 평소와는 다른 각도의 곡선을 그리는 눈매가 분명했으며, 표현을 즐기는 윤은 묻지 않아도 제 이야기를 꺼냈다. 심지어 가장 담담해 보이는 태준마저도 물어주면 기다렸다는 듯 연애담을 자랑했으니, 칠인회에서 조용한 건 환태 뿐이었다. 한참 새 사랑을 찾아 들떴던 수남마저도 저에게 뮤즈는 문학이라고 답하는 환태와 사랑 이야기를 나누기를 포기했을 정도였다. 훗날 술자리에서 저는 어떤 이야기든 잘 들어줄 사람이지 않냐며 속상해하는 환태에게 그야 그렇지만 저에겐 친절한 공감이 아니라 처절한 동감이 필요했다는 수남의 말도 칠인회라면 모를 자가 없었다.

 오늘은 진짜 문학이라거나 그런 소리 말아요, 환태 형. 나 뮤즈라고 못 박았어요, 예술의 여신. 아, 알면서 왜 자꾸 피하시오?

 음, 그…… 뮤즈는 창작에 영감을 주는 존재구, 나에게 창작은 비평이잖아요?

 그렇지!

 그런 의미에서 봤을 때, 나에게 뮤즈란…….

 어, 뮤즈란?

 소설이지요.

 아, 환태 형!

 기대하며 두 손으로 살포시 쥐고 있던 술잔을 탁상 위에 내려놓으며 눈썹을 좁히던 수남은 환태의 다물어진 입술을 보고 다시 말 없이 환태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이거 완전 진심인데? 윤의 거드는 소리에 수남은 섣부른 재촉을 삼켰다. 시를 쓰는 저는 가늠밖에 할 수 없는 환태의 유난한 소설을 향한 애착은 공기 속에 퍼져 자리의 소설가들의 살갗에 가 달라붙은 양 그들 역시 더는 말이 없었다.

 수남 형, 나는 비평가지만은 문학의 입법자가 되기보다는 변호인이 되고 싶어요. 사적으로 아무리 강인한 사람이든 간에, 어떤 면모와 사정이 있었든 간에 법정에 서게 되면 누군가는 변호를 맡아야 하지 않아요? 나한테 의뢰 한 번 맡긴 적 없었던 내 첫 의뢰인 덕에 나도 이 변호사의 꿈을 갖게 됐지요. 뭐, 작가의 이름을 대려면야 모두들 알 법한 저명한 사람이고, 변호를 맡았던 그 작품도 생생하게 기억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누구의 소설이었는가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중요한 건 그 순간이었으니까요.

 학생 때였습니다. 나는 물론 더 어릴 적부터 소설을 좋아했어요. 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이야기를 듣고, 짓고, 활자도 곧잘 받아들이고 신동 소리를 들었으니까. 아, 알아요, 윤 형. 여기 신동 소리 안 들은 사람 없다는 거. 아이, 그냥 나도 그랬다구. 어쨌든 당시에 유독 좋아하던 작가가 있었어요. 수필 하나 없이 소설만 가득 보았는데도 나는 그 안에서 그 사람이 느껴졌더랬죠. 그 사람을 사랑했느냐 물으면 그건 또 모르겠어요. 사랑 이상의 무언가라면 또 모를까.

 특별한 순간들이 몇 번 있었습니다. 숨넘어가게 아프던 밤에 그 사람의 소설이 실린 문예지를 끌어안은 후 고통을 잊고 금세 잠이 들기도 했고, 조용하고 도전을 모르던 침착한 학생이 글을 읽다 그만 말없이 수업을 빠지기도 하고, 그 작가의 글은 음울한 기교로 가득 찼다는 누군가의 평에 싸움이 붙기도 했지요. 한 번 그런 후부턴 항상 변론을 준비해 다녔어요. 읽으면서도 수없이 스스로 묻고 또 답을 찾고. 실은, 정작 그 언쟁이 있고 나니 누구도 내게 시비를 걸지 않았지만요. 아마 그 때부터 나는 비평가의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예, 나도 당연히 변호인 노릇만 했던 건 아니구, 소설을 써 봤지요. 소설에 반했으니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영 아니더라고요. 아니, 그렇게 아니면 또 모르겠는데, 애매하게 아닌 게, 더 괴로운 느낌? 나도 원래 수남 형 못지않게 낭만으로 가득했던 사람이에요, 현실을 찾아가야 했던 날들이 많았을 뿐이지. 아무튼! 소설가 김환태를 버리니 충실한 변호인은 될 수 있더군요. 물론 지금은 난 비평가가 좋아요. 좋지만, 그냥 소설이……. 뮤즈가 원래 이렇잖아요, 아프고, 그쵸?

 그래도 비평이 이리 따뜻한 걸 보면 그 문학 소년이 아직 가슴 속에서 죽지 않았나 보네, 태준의 말에 모두들 끄덕이며 미소 짓는다. 환태 역시 머쓱한 표정으로 웃더니, 한참 시니컬하던 학생 때 글을 보면 그런 소리도 쏙 들어갈 거요, 많이 성장한 거지, 덧붙였다.

 그래서 환태 형, 뮤즈는 누구라고?

 수남 형, 지금까지 이야기를 뭘로 들었어요!

 진짜 안 넘어오네, 수남이 윤을 보며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한다. 더 들려줄까요? 수남 형이 원하기만 하면 나 이틀 내리 말해줄 수 있어요. 경고하듯 목소리가 커지는 환태를 보며 오늘은 환태 형 글이나 읽어야겠다고 수남이 너스레를 떨었다. 평범한 칠인회의 밤이었다.

​© 2018 By 칠인회 뮤즈 합작.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