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네
이윤 X @sealseal1111
칠흑 같은 추위 속 죽음만이 기능한다. 해진의 장례식은 발가락 끝부터 살을 베어낼 듯한 바람이 매섭게 부는 겨울날이었다. 장례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조촐한 이 일종의 예식은 그가 살던 작은 방에서 이루어졌다. 해진이 여간 발이 넓은 사람이 아닌지라 –물론 반어법이다- 찾아오는 사람들도 다 알 만한 사람들이었다. 결국 남는 건 이 사람들이구만. 내 이럴 줄 알았지. 이윤은 새까만 양장을 갖추어 입고는 칠인회와 술을 마시며, 처음으로, 그 외로운 인간을 이 모임에 끌어들이기 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참,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갑니까. 히카루가, 아니 그깟 뮤즈가 무엇이라고, 그게 다 무어라고…. 사람이 일단 살아야 뭐라도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적어도 이렇게 되기 전에 우리한테 소식이라도……. 아니, 형에게 우리는 무엇이었습니까? 대답 좀 해보시오! 해진이 형!” 환태는 술에 취해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해진을 향해 열띤 외침을 늘어놓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윤은 그럴 체력이 없었다. 이미 소진해 버린지 오래였다.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그의 손에게 직접 펜을 쥐어 준 것은 이윤 본인이었다. 그 이후로도 늦은 밤, 그가 모르게 ‘검은 방’에 들락날락하며 창문 너머로 해진의 동태를 확인하던 것 역시 다름 아닌 그였다. 그러므로 해진의 생의 부재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 역시 당연히 이윤이었다. 윤은 입술을 짓씹으며 중얼거렸다.
“그깟 뮤즈가 무어냐구 물었는가, 정말로?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을 다 알지 않소. 우리라고 다를 거 없어. 나라고 다를 거 없어...”
수남이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고는 술잔을 채우며 말했다. “윤이 형은 그런 사람 만난 적 있는 것처럼 말을 하시네.”
“그, 다들 뮤즈 비슷한 거는 만난 적 있을 것 아닌가. 당연히 나도… 아니, 되었다. 이제는 다 의미 없는 이야기일 뿐이오.”
그래도, 형. 이라고 말하는 수남을 못 본 체 이윤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는 습관처럼 상념에 빠져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것은 그가 미처 동경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5년 전 어느 초여름 날이었다.
* * *
“그러니까 누가 요즘에 사랑같은 것을, 에이, 말하기도 낯간지럽소 그래. 누가 요즘 세상에 사랑을 진심으로 합디까?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간만에 찾은 술집이 야단이었다. 사연인즉슨 서른 줄을 갓 넘긴 사내, ‘안 형’이 여자 때문에 밤새도록 눈물을 쏟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윤에게도 그런 대로 안면이 있는 사내였던 것은 둘째치더라도, 술집 주인이 부탁한다는 눈빛으로 이윤을 애타게 바라본 까닭에 그냥 지나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윤이, 윤이 자네는 모르네. 사랑으로 하루를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자네는 몰라.”
안 형의, 어떤 원망과도 비슷한 말에 이윤은 눈썹을 찌푸리며 옆 의자에 썩 불량스러운 자세로 앉았다.
“말 잘하셨소. 나는 모르지요. 허나 알고 싶지도 않소.” 그리고는 조금 심한 말을 했나, 하는 생각에 잠시 눈치를 살피다가도, 마치 선전포고를 하는 양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말이오. 사랑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절대로 온전한 목적이 될 수 없고 안식처가 될 수도 없소, 형. 아시잖습니까.”
안 형은 더 이상 상처받을 것도 없었다.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 텅 빈 눈동자로 윤을 바라보았으나 화를 내지는 않은 것은, 다만 그가 윤이라는 작자를 아는 탓에 어느 정도 양해된 바 있었던 것이다.
“왜 그런 말을 해, 윤이. 간절히 찾는 사람이 있는데 어찌 목적이 아니라 말하는가.”
“나는 모르겠소.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또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사랑 때문이 아니오. 그런 게 있다 한들 그게 어떤 개인을 향할 일은 없소. 내가 인간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인간존재에 대한 믿음 때문이지 사사로이 불타오르는 마음은 아니올시다.”
이윤은 알 수 없는 사람 하나에 완전히 함락된 양 몸을 볼썽사납게 구긴 안 형의 등허리를 부러 짓궂게 살살 문지르며 달래었다.
“기운 내시오. 형. 형은 내가 왜 이리 말하는지 알지 않소.”
“그래, 알지. 아는데…….”
이윤은 한참 안 형과 이야기를 안주 삼아 술잔을 나누다 동이 트기 전 제 몸을 가까스로 삐걱대며 술집을 나섰다. 선선한 새벽 공기가 잘 벼리어진 칼처럼 느껴짐이 심상찮았다. 안 형이 조금 걱정되었으나 그 뿐이었다.
집에 무슨 정신으로 귀환했는지 모를 노릇이었지만 벌들이 맹렬히 진동하는 듯이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뜨자 해가 중천이었다.
“이제 일어났니? 젊다고 그렇게 막 살다가는 어느 순간 훅 꺼지고 말게다.”
“태준이 형이오?” 흐릿한 눈을 한껏 찌푸리며 태평하게 침입자를 향해 웅얼거렸다. 안경을 찾는 듯 주변을 더듬대자 태준이 다른 한 손에 안경을 쥐어주었다.
“눈도 잘 안 보이는 녀석이 말이야.”
윤은 짐짓 과장스러운 손짓으로 안경을 귀에 걸치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건 훈장이에요, 훈장. 애체 없이 선비란 사람들은 어찌 그리 글을 읽었는지 모르겠소.”
“능청맞기는…. 요즈음 원고는 하고 있는 게야? 흔적이 보이질 않는데.”
“물론, 하고 있소. 초안도 이미 있습니다.”
기실 태준은 원고를 하고 있냐고 물으면서도 하고 있지 않다는 답을 기다리며 책상의 종이 뭉치들을 뒤적거리고 있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답에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돌려 윤을 바라보았다. 태준은 반신반의하며 다시 한 번 같은 의문을 내비쳤다.
“정말이냐? 윤이 네가 벌써 원고를 하고 있다고? 어디 그 초안 좀 보자.”
“초안은 정말 있소. 다만 아직 종이에 쓰지 않았을 뿐 이 내 머리에 처음부터 마지막 어절까지 쉼표 하나도 빠짐없이 다 완성되어 있다오.”
예감한 답변을 얻어낸 태준은 조금도 상심할 것 없다는 듯 그저 벙글거리는 윤을 향해 눈을 흘기었다. 그리고는 오래간만에 진정 형 노릇을 하려는 듯 의자에 고쳐 앉았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글을 많이 써라, 윤아. 응? 윤이 네가 단독으로 글 매우 쓰는 것 알고 있다. 그럼 발표를 해야지. 너는 그 재능을 타고 난 이상 마구 써내야 하는 어떠한 의무가 있다. 안똔 치호프는 한 해에 일백편도 넘는 소설을 썼다던데, 네가 그에 못 미칠 바 무어니.”
이윤은 한껏 빈정대며 침대를 정리했다. “남의 나라 작가를 닮아 좋을 것 무엇 있소. 아, 폐결핵 하나는 닮았군. 요절하는 것도 닮으면 더욱 좋겠소만.”
“윤이.”
“하긴 요절이라고 해도 마흔을 넘기지 않았던가, 그래. 내가 마흔이 될 때까지 생이 꺼지지 않는다면 바랄 게 없을 장수겠습니다.”
“이윤!”
“형은 그게 문제에요. 항상 그렇게 이국 작가들에 빗대어 작금 조선의 글을 이야기하려는 일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윤은 크지 않게 소리치며 구태여 침대에서 일어섰다. 나갈 채비를 하려는 듯 의장을 헤치며 태준을 뒤로 했다. 조금 역정이 난 듯도 했지만 그저 지끈거리는 머리가 과하게 아팠을 뿐이었다. 진상을 밝히는 말을 덧붙이며 태준의 등을 떠밀었다.
“참, 그, 내가 타인의 화를 돋우는 데 재주가 있습니다. 그럴 의도로 한 말이 아니라는 것 알아. 미안해요. 화를 내려던 것은 조금도 아닙니다. 아직 봄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 그렇게 가볍게 입었다가는 잔병 치르기 쉽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시오, 형. 곧 뵙시다.”
태준이 문 밖에서 잔말을 하는 것도 같았지만 모르는 체 문을 억지로 닫고 셔츠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각별한 볼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으레 그렇듯 집 주변을 조금 걷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원고를 닦달한다고 나오냔 말이야, 작가라면 많이 보고 많이 느껴야 뭐라도 나오지. 노면전차를 타고 세상을 구경할 수도 있었지만 경성역까지 도보로도 몇 분 걸리지 않는 까닭에 몸소 땅을 밟기로 결심했다. 담뱃값이 간당간당할 정도의 빈곤도 큰 이유라면 이유였다.
‘잘하면 열차에서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을 목격할 수도 있으리라.’
그리고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 무엇에도 묶이지 않은 산뜻한 한 걸음이었다. 아무 것에도 묶이지 않은 채로, 그는 그렇게 있었다.
* * *
혜주는 동경에서의 짧은 유학을 중단하고 고향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다 경성을 향해 달리는 열차에 충동적으로 몸을 실었다. 음악이라는 것의 껍데기는 배웠으나 그 알맹이를 채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성으로 가서 글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해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얻어낸 시간이 딱 두 달이었다. 목표도 있고 돈도 있고 계획한 기간도 있겠다, 걱정할 것 하나 없다는데도 딸을 보내는 것이 걱정되는지 부모님은 잇따라 자꾸 말을 얹는 것이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 부모님께는 번지르르한 말로 그럴 듯하게 포장했지만 젊은 치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어쨌든 기적적으로 그녀는 ‘자유를 허락’받았다. 혜주는 이보다 역설적인 처지가 어디에 있겠는가, 하고 근소한 한탄을 하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역이 손톱만한 크기로 보일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마구 쏟아지듯이 바깥의 대기를 향해 돌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녀는 홀로 튀는 존재였다. 빈곤이 뚝뚝 떨어지는 회갈색 조선인들 사이에서 하얀 서양식 치마를 입고 있어서라기에는 이미 도처에 고급 양장을 멋나게 빼입은 청년들이 무수했다. 새카만 머리카락을 어깨에 닿게 말아 올린 것도 그리 희귀한 꼴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에게는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귀티가 느껴졌다. 그것은 그녀의 학식 따위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으며, 부유함에서 비롯된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 ‘귀티’라는 것은 통상적인 귀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희소성을 가리키는 것에 가까웠다. 사람들에게 그녀가 귀하게 느껴지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사유하는 존재에 대한 우리 종의 본능적 숭배로 인한 것이었다.
그다지 무겁지는 않은 짐가방을 들고 인파를 헤치며 힘겹게 걸어가던 그녀의 치마가 좌우로 하느작거렸다. 힘에 부치는 듯 바닥만 뚫어질 듯 보며 걸음을 하나하나 옮기느라 전방에 신경을 소홀히 한 탓에 역사에서 시내로 들어서는 계단에서 모퉁이를 돌아 들어오는 한 사내를 보지 못하고 부딪히고 말았다.
“아, 이런. 미안합니다.” 남자는 혜주와 부딪힌 왼쪽 팔을 조금 습관적으로 쓸면서 사과했다. 그러고 나서 그냥 지나가면 되는 것을, 고개를 들었을 때 맞닥뜨린 혜주의 눈빛에 그는 당황하고 말았다. 가만히 서서 멀뚱히 이윤을 응시하는 눈이 커다랗게 뜨였다. 사내는, 그러니까 이윤은 짧은 고민 끝에 화려한 옷을 입고 있는 혜주가 일본인이라고, 그래서 제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판단했다.
“어, …고멘나사이.” 반신반의하듯이 문장 끝을 살짝 올려 두 번째 사과를 건넸다. 혜주는 그제야 우아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에요. 조선인입니다. 저는 다만…. 혹시, 강릉에서 유년시절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윤은 흠칫 몸을 떨며, 혜주의 얼굴 곳곳을 비로소 바라보았다. 짐작가는 이름이 없었다. 누구지, 단순히 고향 친구라면은 좋겠지만 괜히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내 생각이 맞다면 당신은….” 그리고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이윤의 어린 시절 이름, 말하자면 본명이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소녀의 얼굴에 윤은 번개에 맞은 듯 재빠르게 외쳤다.
“혜주? 성혜주?”
“맞구나. 세상에, 경성부에 거진 오십만이 산다고 하던데, 그 중에 어떻게 또 너를 이 번잡한 곳에서 만나게 되는구나.”
아이처럼 샐쭉 웃는 표정을 자세히 보자 그제야 그 어린 날의 소녀가 겹쳐보였다. 반갑지 않았다고 한다면 필시 거짓말이리라. 그리 친한 것도 아니었는데, 세월을 입고 나타난 그녀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 * *
경성의 유명 다방은 언제나처럼 붐비었다. 구경을 시켜준답시고 자신만만하게 들어왔으나 원체 한정된 곳만 떠돌아다니는 자인지라, 이윤에게도 이 곳은 퍽 낯설었다.
“그래, 글을 쓴단 말이야? 나는 네가 어엿한 공학도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너는 어릴 때부터 쭈욱 음악을 좋아했었지? 나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다. 사람 일이 그렇게 되더라.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투서는 종종 받는단다. 그것도 이를테면 열성적인 판-라따 아니겠니.”
윤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면서 허공에 글을 쓰는 시늉을 했다. 혜주는 잠시 무언가 걸린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다 조심스레 물었다.
“내 그래도 꽤 문학을 안다고 생각하는데, 네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혹시 필명을 쓰니?”
“으응, ‘이윤’이라는 이름을 쓴다.”
그러자 혜주는 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 놀람을 조금도 감추지 않고 소리 높여 말하는 것이었다.
“<신경질적으로 비만한 삼각형>의 그 이윤? 설마 네가 그 이윤이라는 말이야?”
윤은 수없이 말한, 자랑스러운 제 필명이 어째서인지 민망스럽게 느껴졌다. 문학의 탈을 쓰고 자신의 모습을 변용시키는 것에 일종의 자부심마저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저 무용담을 이야기하는 철없는 학생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이상한 기분을 애써 뒤로 하고 평소처럼, 능청스럽게 팔을 벌리며 자랑했다.
“그래. <이상한 가역반응>의 그 이윤이지.”
“세상에, <조선과 건축>에서 항상 네 시를 기다렸단다. 세상에, 세상에…. 정말 잘 읽었어, 네 글이 내게 힘이 되었고 또 영감도 주었다, 윤아. 정말이야.”
혜주의 말은 틀림없이 진실이었다. 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다니, 그녀는 벌써부터 경성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이윤이 제 친구일 것이라고는 조금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이윤은 혜주의 칭찬이 낯간지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어떤 여성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다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자랑하곤 하던 이윤은 그 어린 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그, 고맙다. 아직 발표하지 않은 글도 산더미처럼 쌓여있어.”
“정말이야? 어서 발표를 해주면 좋겠다. 주제넘은 말이지만... 나는 너같은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글을 많이 남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해, 거창하지만 인류를 위해서도.”
이윤은 미간을 부드럽게 찌푸렸다. 태준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윤은 발도 넓고, 인간관계도 다양한 사람이지만 그에게는 언제나 나름의 ‘선’이 있었다. 그 선은 겹겹이 쌓여 벽을 만들기도 하고, 투명하게 내비치며 최소한의 안전장치로서의 역할만을 수행할 때도 있었다. 그녀에게는 어떤 선이 그어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태준의 얼굴이 떠올라 괜히 심술을 부린 것인지도 모른다.
“안톤 치호프처럼 다작이나 할까, 그래.”
“다른 작가 이야기를 할 필요가 무엇이 있니? 우리는 지금 다른 누구도 아닌 네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남 이야기를 하려던 게 아니다, 윤아.”
그 순간 윤은 놀랐다. 자세가 바뀌었다. 가슴을 활짝 펴고 다리를 한껏 꼬며 건방지게 앉아있던 그는 저도 모르게 무릎을 모으고 그녀의 이야기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대화를 하면 할수록 그녀와 자신이 얼마나 비슷한지, 그리고 결정적인 부분에서 얼마나 반대인지 알 수 있었다. 거울에 자신을 비친 모양새인 것 같은 그녀를, 한없이 존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혜주는 한참 동안이나 실없는 이야기를 하며 웃더니, 은은하게 들려오는 재즈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윤은 그런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음 하나일 뿐인데, 그 하나 하나가 아름답다고. 아니 눈부시다고 이윤은 말하고 싶었다.
차라리 혜주가 형편없는 사람인 편이 그에게는 더 나았을 지도 모른다.
* * *
“어딜 가시길래 그리 얼굴빛이 좋으십니까? 드물게도 일을 이렇게나 빨리 끝내시구.”
“우리 몰래 애인을 숨겨두고 만나는 건 아닌지 몰라.”
윤은 문 앞에 걸려있는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정돈하며 대꾸했다. 오 분도 넘게 거울을 들여다보고 있는 윤을 향해 동료들이 말을 던졌다. 안경도 열 번은 닦은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지저분해 보이고, 하여간에 계속 신경이 쓰였다.
“헛소리, 헛소리. 내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시오? 다 알면서, 사람들 참. 그냥 친구 만나러 가는 길이오.”
“허허, 알지. 알아. 우리 윤이는 사랑놀음을 하기에는 너무 바쁜 놈이라는 것을. 너무 바빠서 원고할 시간도 없지, 암!”
윤도 사람인지라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어, 태준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에이, 미안합니다. 이야기가 왜 그렇게 흘러가오, 형.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다들 적당히들 하시고 들어가시오.”
웃음소리가 가득한 편집실을 뒤로 하고 길을 나서며 얇은 자켓의 단추를 풀었다. 초여름의 습기가 적당하게 볼을 두드렸다. 약속한 다방으로 가는 걸음이 산뜻했다. 언제나 5분, 10분씩 늦으며 실없이 사과하는 것이 장기였던 윤은 답지 않게 일찍 길을 나섰다. 약속한 시간이 되려면 조금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혜주는 먼저 와서 얇은 공책에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맞은 편에 앉아 책상을 두어 번 두들기자, 그제서야 혜주는 고개를 들어 윤을 마주보았다.
“미안, 일 마치고 왔니?”
“으응, 이제 마치고 오는 길이다. 그 책은...?”
혜주는 조금 부끄러운 듯 책을 숨기려다,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네가 보기에는 가소롭기 짝이 없겠지만은, 그냥 글을 좀 써보았단다. 일기도 쓰고, 가끔 가사도 쓰고.”
윤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너도 글을 쓰니? 봐도 되는 거야?”
혜주는 조금 고민하다가, 하는 수 없다는 듯이 공책을 스윽 내밀었다. “대신 너도 네 글 보여주면, 좋아.”
“내 글? ……아, 지금 집필 중인 소설이 하나 있는데 볼래? 미완성이고 아직 발표도 하지 않았지만 대강은….”
“좋아, 볼래!”
윤이 서류가방을 뒤적여 꺼낸 원고지다발을 향해 혜주는 손을 뻗었다. 벌써 제 일기는 잊어버린 것만 같아서 우스웠다. 요란한 교환식이 끝난 뒤, 둘은 말없이 글을 읽어내렸다.
‘동경 유학 중의 기록
조선의 남성들이 우스워 견딜 수가 없다. 자신의 생각이라고는 조금도 없고 죽은 지 오래인 사상가들의 불알이나 주무르는 게 다면서 제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꼴이 너무나 우습다.
…
세상이 변하고 있다. 우리 부모님들도 제 따님들을 옛날 당신네들이 자라나던 시절 따님 대접하듯 했다가는 엉뚱하게 혼이 나실 시대가 왔다. 오빠라는 자들이 어림없이 동생을 허명무실하게 취급했다가는 코 떼일 시대다.’
윤은 웃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이런 친구가 지금까지 어디 숨어있었단 말이야?
‘위험하오, 그대 내게 손을 내밀면 나는 춤을 출 수 밖에 없는데
당신의 붉은 모로코 가죽의 구두에 농염하고 농염한 붉은 스-텝으로 내 그림자는 붉게 멍들고 있소. 하지만 그대의 손을 놓고 싶지가 않구려’
윤의 소설은 그의 시처럼 감각적이었다. 대사 하나하나가 그의 숨과 같아서 혜주는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숨도 쉬지 않고 서로의 기록을 읽어 내린 둘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대단하다! 윤아, 정말 모든 부분이 아름다워. 특히 이 남자 주인공이 알면서도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점이….”
“혜주야, 이 글은 정말 좋다. 친구가 아니라 문학적 동지로써 말하건대 손색이 없어. 전투적인 일기도, 아름다운 가사도 참 좋다. 가락이 있는 게야?”
약속한 것처럼 서로를 향해 우다다 쏘아붙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이윤은 안경을 고쳐 쓰며 공책을 그녀의 품에 다시 돌려주었다. 혜주는 잠시 얼어붙은 듯 윤을 바라보다, ‘전투적인 일기’가 그제야 생각난 듯 공책을 낚아챘다.
“이건, 그러니까 유학 중에….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그 때의 기록이니 이해해 주렴.”
유학. 이윤은 어렸을 때부터 동경을 꿈꾸었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혜주는 동경을 이미 느끼고, 경험했지만 부족함을 느끼고 이 곳으로 돌아온 것이다.
혜주의 집에서는 부모님이 다시 그녀를 동경으로 유학보내기 위해 설득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혜주는 두려웠다. 무엇이? 묻는다면 딱 잘라 말할 수 없겠지만 그저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낯선 공기도, 제 부족함도, 세상의 차가움도 타인의 재능 도.
“혜주야. 내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좋은 기회를 버리기에 네 재능이 너무 아깝지 않니?”
무엇보다, 이런 뻔하디 뻔한 말을 해줄 사람이 그녀에게는 여태 없었다.
“윤아, 하지만….”
“너는 너를 너무 과소평가한다. 친구로서 하는 말이 아니야. 물론 내가 세상사람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지만, 적어도 작가 이윤으로써, 대중 이윤으로써 한 마디 하건대 네 재능은 여기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 감히 말하자면, 너는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배워야 해.”
그녀의 두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었으나 안타까운 마음에 자꾸 두어 마디를 얹게 되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확신이 있었다. 그건 그녀에 대한 믿음과는 또 조금 다른 것이었다. 윤은 한숨을 뱉었다.
“어쨌든, 정말 좋아서 그래. 여기 서문은 무얼 인용한 게야?”
“‘몽상만큼 미래를 만들어 내기에 적합한 것은 없다. 오늘날의 유우토피아는, 내일은 살과 뼈를 가진 현실이 될 것이다.’ …비크토르 유고의 <애사哀史>에 나오는 구절이야. 그, 다른 작가를 인용함이 썩 옳지 못한 일인줄은 알지만 다른 적당한 구절을 찾지 못한 까닭에 내 좋아하는 구절을 써 보았다. 윤이 너도 읽어본 적 있니?”
<애사>, <장 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불란서의 소설은 읽어본 적이 있었지만 이윤에게는 썩 와닿지 않았었다. 본질적으로 이윤은 사랑을 또 사람에 의한 구원을 조금도 믿지 않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읽어본 적은 있지만….”
“네 입맛에는 맞지 않을 듯도 하지, 그래.”
윤의 뒷말을 이미 아는 듯 혜주는 완성되지 못한 이윤의 문장을 재빠르게 완성시켰다. 이윤은 간파당하는 것을 즐기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혜주는 좋아하는 소설 이야기가 나오자 들뜬 듯 물음을 던졌다.
“윤이 너는 사랑이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애사>의 주인공이 구원받았듯이 말이야. 사랑이 한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하니?”
달변가 중에서도 달변가인 그도 어째서인지 그녀의 물음에는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럼에도 좋아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할 리가 없는 이 남자는, 그러니까 19세기의 엄숙주의에서 아직 열렬히 허우적대고 있던 그는 자신과 다른 것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녀와의 차이점은 오히려 기분 좋은 화음처럼 느껴졌다.
“구원은…. 구원은 허상이고, 정말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결국 오롯이 자신의 힘이 필요한 법이야. 사랑 같은 것을 가지고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나는 아니 될 것이라고 보는 게야.”
숨을 잠시 고르고는 제 나름의 철학을 펄쳐보았다. 사랑하면 닮아간다고들 하는 그것은 사랑이 이상향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향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말이다. 성인聖人을 사랑하면 닮아가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하겠지만, 그러니까 힘과 노력을 이끌어내는 촉매로써 기능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은 결국은 그뿐이라고, 이윤은 생각했다.
혜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한 것도 같았지만,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빙빙 문지르며 쐐기를 박았다.
“기실 나는 사랑 때문에 똑똑한 사람들이 스스로 인생을 망가트리는 것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설령 나는 부족하기 짝이 없어 미처 모를지라도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재능이 넘치는 사람들도 사랑 따위를 하며 그, 저만의 고독 속에서 그저 갇혀 죽어갈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점점 나는……. 그래. 그렇게 되었다. 답이 되었을지 모르겠구나.”
혜주는 멋쩍게 웃는 이윤을 조금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서린 오묘한 감정은 본인도 알지 못하는 것이었다.
“설사, 남들이 보기에는 인생을 망치는 것처럼 보여도, 구속되는 것처럼 보여도 말이야. 그건 행복한 추락이고 행복한 구속일 수도 있어.”
윤은 조금 심통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반박당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아는 듯한’ 혜주의 모습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윤은 스스로를 천재라고 칭했지만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 지점까지 모두 더해 천재인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 기분이 나빴다. 자신이 알 수 없는 경험을, 역사를 거친 사람의 말이 다른 종류의 색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