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방문
김환태 X @skehgid
여름의 태양이라는 것은 꽤나 독한 탓에 예의 병약하고 허약한 예술가란 작자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자빠지기 일쑤다. 그 치들에게 일일이 원고를 받아내기란 여간 힘 빼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곧 병구완과 원고 독촉을 동시에 해야 한다는 것을 이름이다. 내가 그 일을 짊어지게 된 것은 ‘칠인회의 유일한 평론가가 이러한 일에는 가장 적합하다’는 삼인의 동의와 일인의 기권이 편집회의를 빙자한 어느 날의 술판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 자리에 일인의 반대가 없었던 것은 당시 그 일인은 원고청탁으로 인해 일찌감치 자리를 파하고 자리를 떴기 때문이오, 그 삼인이 먼저 흔쾌히 그 일인을 보내고자 청하였기 때문이라. 하여 자리에 참석치 못한 일인의 기권과 일인의 타의적 기권이라 하여도 마땅하겠다.
꽤나 심통이 난 상태에서 첫 번으로 마주한 이는 『에-김형 아니오.』하며 아는 체를 하는 N이다. N은 예술가라 부르기 가장 적합한 이가 아닌가 싶다. 낭만적인 시어들도 그러거니와 사람의 말을 기본적으로 잘 안 듣고 저만의 철학이 있어 다른 이의 글을 아주 깔본다. 당한 자들 역시 앙갚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지만 서도 그이의 글을 읽으면서는 차마 못났다라고 말할 수 없으니 여간 약 오르는 치가 아닐 수 없다.
아직도 눈꺼풀이 반밖에 안 올라와있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해가 중천에 떴건만 여태 술통에 빠져있던 게 분명하다. 더위와 술에 먹혀 의식이 아등바등하는 와중에 용케도 사람은 알아본 것이 기특하다.
『눈이나 뜨고 말하쇼』
하니 또 허허 웃는 꼴이 정신줄은 이미 저 멀리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그래, 어쩐 일이오』하길래
『원고 땜에 왔지요.
그래, 원고는 잘 진행되어가고 있소?』하고 본론을 꺼낸다.
그러자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슬픈 표정을 짓는데 한 두 번 본 면상이 아니다.
『아이, 이것 참. 안타깝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오.』하길래
모른 체
『왜 아니오?』하고 장단을 맞춰주니
『나의 뮤-즈가 겨울 그 눈 그림자 뒤편에서 아직 오지 않아 도무지 나는 쓸 수가 없소.』
라며 또 다시 허튼 소리를 내뱉는다.
그럼 나는 또
『오호, 거 참 우연이구려.
여름 월호는 김형의 원고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으니 나 역시 떠날 수가 없는데 말이지.
원고 내놔요.』하는 것이다.
제 말을 들어주지 않으니 입이 닷 발은 나와선 앉은 채로 심통을 낸다.
『모르오. 아니 내가 하기 싫어 안하나 어디.』하고는 또 다시 모르쇠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아아아 그럼 이거라도 가져가시든가.』
하고는 건네는 것이 종이 한 귀퉁이에 끄적인 시 한 두 구절이다.
『에엥, 이거 반쪽짜리 아니오.』
하며 언짢아하자
『그럼 기다리시구랴. 나의 뮤-즈가 당도할 때까지. 아니면 그 때까지 기도나 해주시구랴.』
라며 고개를 팩 돌리는데 뻔뻔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말만 남겨두고는 또 다시 어디론가 나가려는 이의 뒷통수를 잡고는 겨우 술국을 먹여 들여보내었다. 해장을 시켜놓자 『속도 편해졌으니 한 잔 더하러 갑시다』라며 날뛰는 이를 도로 집에 넣어두었으나 내가 문을 나서고 두 세 걸음 후면 뛰쳐나올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갈 길이 멀어 두 세 번 거푸 잡을 수는 없으니 통탄을 금치 못한다.
Y는 자기의 글과 같은 사내다. 허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을 본인만은 부인한다. 이 치는 제 집에 붙어있는 적이 별로 없다. 요즘은 H라 하는 이의 집에 계속해 걸음을 하는 모양인데 문제는 H라는 이가 영 낯을 가려 그 집에 까지 폐를 끼치기가 어려움이다. 그러한 것을 눈치 빠른 Y라는 작자가 모를 리 없음은 물론이오, 더욱 뻔질나게 H의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리라. 해도 혹시 몰라 버릇처럼 Y의 집에를 들르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간만에 집에 얌전히 누워있는 것이다.
이제 되었다 싶어 퍽 흐뭇한 맘으로다가
『거, 원고는 잘 되어가오?』하니
『고럼, 문제 없소.』
라고 대꾸하는데, 이 치가 제 원고에 문제가 없다 할 때가 가장 문제가 있을 때이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행색을 보니 원고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신 듯해 마음이 놓이오만, 이왕 온 걸음 초본이 라도 먼저 넘겨주심이』
하고 말을 꺼내는데 덥석 말을 자르고는
『김형, 내 지금 손님맞이 할 형편이 아니오.』
하며 이불 속에서 꿈쩍도 안하고 누워 무언가를 빤히 쫓고 있는 모양새가 본디 얇디얇았던 정신줄이 똑 끊어진 것이 분명해 보임이다.
『거, 그럼 방해 안 되도록 원고만 받고 내 그만 물러가리다.』
하고 운을 떼니
『원고… 그르치, 원고가 필요해서 오셨구료?』
하고는 그제야 앞서 했던 말의 뜻을 알아차린 듯 목을 가눈다.
그리고는 내 쪽을 바라보며
『김형, 원고는 없소.』
하고는 단박에 말을 내뱉는다. 이런 적이 일‧이회가 아니건만 요번엔 영 상태가 아니다 싶어 고만 물러가자 결심을 하고
『그러믄 진작에 말씀을 하시지. 그럼 내 다음에 다시 들르리다.』
하고 떠나려는데
『아니오. 김형, 이제 원고는 없소.』
하니 이는 문인들의 고질병인 우울이 덮친 시기임에 틀림없다. 유독 뺀질거리는 치이건만 가끔씩 이면 무언가에 발목이라도 잡힌 듯 꺾여 버린다. 갈 길은 멀지만 뚱한 얼굴을 보고도 밖으로 나설 만큼 마음이 모질지는 못한지라 어쩔 수 없이 누워있는 그 치의 옆에 앉고 만다.
『아 이거 참 큰일이구료. 우리 불쌍한 독자들은 고럼 또 누구의 글에 투서를 보낸단 말이 오?』
라며 들으라는 듯이 말을 건네봐도
『무얼, 또 다른 이를 찾을 테지.』
하고 빠져나가버린다.
『이 세상에 대체되는 글이 어딨소. 그런 글은 없소.』
해도
『이 세상에 영원한 것 또한 없는 법이지.』
하고 받아치는 식이다.
『원, 말도.
영원히 사는 인간이 없는 한 영원에 대해 확언할 수 있는 이 또한 없소.
애당초 그런 게 있기나 하오?
우리가 관여하려 애쓰는 것도 지금 한 때의 조각뿐인 것을.
무얼 그리 매달고서 글을 쓰려 하고 있단 말이오.
당장 눈앞에 것도 모르는 인생사들 사이에서.
이형은 그저 여태까지처럼 쓰시면 되오.
그 이후는 우리 평론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 두시구랴.』
하는데 책상 한 구석에 반짝하고 떨어진 안경이 보인다. 무릎걸음으로 이를 잡아들어 건네며
『허니, 여기 이 안경 쓰시고, 방바닥에 그만 붙어있고, 당장 떨치고 일어나 눈앞에 있는 여 름 월호나 좀 구해주시구랴.』
하고 흘깃 눈치를 살피니 여전히 퉁퉁 부어있는 것이 차도는 없는 듯 하나 원체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난 치이니 이전보다 나아졌음을 안심한다. 저도 어느 정도 비비적거렸다 싶었던 것인지 안경을 건네받고는
『내 김형 말에 동의치는 못하겠으나 불쌍한 명일일보를 살려야한다는 것은 김형 표정에서 알겠구랴.
어쩐지 글이 안 써지더라니.
자, 이제 안경도 되었겠다, 원고도 금방 완성될 거외다.
이제 금형은 가서 가만히 기다리기나 해요. 아주 비평이 절로 쏟아지는 작품이 당도할거 요.』
하며 허세다.
얼마 안 있으면 또다시 뒤돌아 청승이겠지만 청승떠는 속도만큼 금세 힘이 나서는 또 여기 저기 쏘다니며 K- L-하며 부를 것이 뻔하기에 오늘로 임무는 다했다 하고 이전에 끄적였음으로 짐작되는 원고뭉치로 보이는 것을 들고 나와 버린다.
다음으로 들르는 곳이 J의 집이다. 이 집의 문간은 어찌나 높은지 누구도 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문을 두드리면 그 집 일하는 아이가 나오는데 하도 자주 뵈이니 눈에 익어 만나기만 하면 안쪽엔 들리지도 않고선 상투적으로 입을 연다. 그 이가 하는 말까지 혼자 문답 할 수 있을 정도다.
『얘, 정지용 선생 집에 계시니』
『예, 주인 어르신께선 곧 원고 주신다구 하셨어요-』
『그래, 그럼 명일일보서 원고에 관하여 왔다 간다고 전해주.』
『예,』
그리고선 문짝만 보구 바로 돌아오게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들르는 곳이 T의 집이오, 가장 평탄하다. 문을 두드리면
『들어오소.』
하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온다.
그리고 방 한구석에서 원고지에 둘러싸인 그이를 만나게 되는데 편집까지 도맡은 지라 제 원고와 남의 원고에 둘러싸여 원고만큼 얼굴이 허옇다.
『요번엔 성적들이 어떤가 그래.』
『발간은커녕 병수발이나 들게 생겼소.』
하면 뭐가 좋은지 껄껄댄다.
『해서, 이형 원고는?』
『내 것도?』
하며 능청을 떠는 꼴이 딱 봐도 더위에 지쳐 원고 역시 쳐졌음이다.
슬슬 힘에 부친 내가
『거, 잘 아시는 양반이 능청을 떠는구료?』
하고 면박을 주어도
『저 밖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원고지마저 눅진하니 녹고 있지 않은가. 이런 종이 위에 무얼 쓸 수 있겠나.』
라며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보이곤 빠져나가려 한다.
『요즘은 원고지도 열사병에 걸리는 모양이지요?』
『말이 그렇다는 게지. 말이.』
하고는 멋쩍게 웃으며 버티기에 나 역시 그 앞에서 버티고 선다.
밖에서는 매미가 악을 질러대는데 안은 T의 숨소리만으로 가득 차버린다.
한참을 사람을 없는 취급하는 듯 하더니 헛기침을 몇 번하고 내 쪽을 흘깃 살핀다. 이내 양 손을 들며
『알겠소, 알겠어. 김형은 물러갈 기색이 없고 원고는 여전히 미적지근하니 방법이 없군. 임시지만은 우선은 요것으로 막음하는 것이 옳으렷다.』
하고는 영 만족치 못한 표정으로 원고를 하나 건넨다.
『어째 알 거 다 아는 양반이 원고 한번 쉽게 내주는 법이 없구료.』
라며 핀잔을 주어도
『그게 또 묘미 아니겠나.』
라는 헛소리를 해대니 짐짓 못들은 체하고는 문을 나선다.
해서 다시 신문사로 돌아와도 빈손이나 다름없다. 헛걸음을 시키는 못난 것들의 책상을 노려보며 미완의 원고지들을 듦에 원고지마다 각양각색 그 치들의 능청스런 얼굴이 떠오르니 영 속이 거북해지는 것이다. 왈칵 못났다는 말을 쓸까 싶다가도 또 한참을 들여다보면 반푼이들이 재주는 있어 나도 모르게 무언가를 쓰고 있으니 이번 호도 어찌 저찌 발간은 됨직하는 것이다. 그러면 또다시 있을 가을 고개의 가정방문을 기다리지 못할 이유를 찾지 못함이니 못난 것이 그 치들 뿐은 아님이라.